[안나세나] 글 01: 왈츠

PNalys 2024. 8. 14. 15:27

 한낮의 햇빛이 가득 드는 곳.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한 때. 흩날리는 교복과 차분한 음악. 이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음악이 끝나지 않기를 빎과 동시에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한다. 잠시간의 꿈과 같은 것이니 욕심을 가지지는 말아야했다. 그럼에도 너희는 항상 이 순간을 꿈꾸게하지. 곁에 있으면 꿈을 꾸게 하는 사람들. 깊고 단 잠을 잔 것처럼 나를 충만하게 하는 것. 그건 너희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조금은 귀찮고, 어쩌면 조금 부끄러워 같이 추자는 핑계를 댔음에도 기어이 너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더라. 아마 즐거웠갰지. 귀찮고 부끄러운 감정들을 뒤덮어 버릴정도로 강렬한 행복이었을 것이다. 기꺼이...라고 하기엔 조금 그렇지만 아무튼 제 장단에 맞추려 나와준 이의 손을 잡는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평소보다 능글맞은 말투로 농을 던진다. 아가씨, 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안나니까. 에스코트 하듯 손을 내밀고, 평소의 막무가내인 스텝보다는 더 상냥한 스텝으로. 어쩌면 저를 아는 이들이 놀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뭐 어떤가. 지금 이 곳에 있는 건 제 가장 부드럽고 상냥한 부분을 내어줘야하는 이들인데. 심지어는 그게 정말 기껍다는 점이 스스로도 아직 조금 어색했다. 맞잡은 손이 따뜻하고 평소보다 가까운 거리감이 조금은 어색하다.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시선이 잠깐 얽혔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부러 상냥하게 눈을 휘어보인다. 사실, 일부러 할 필요도 없었다. 제가 좋아하는 이와 춤을 춘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정말 오랜만에 느끼고 있었다. 좋은 것 더하기 좋은 것은 아주 좋은 것이라고. 지금보다도 어렸던 제 유년을 잠식했던 그 감정을.
 부드럽게 허공을 수놓는 붉은 머리카락이 어쩌면 지금 우리를 비추는 햇빛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초록색 눈이 저를 올곧게 바라보는게 좋았다. 슬쩍 비켜가는 것이 어쩌면 아쉽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얗고 파란 교복이 정말 예쁘게 잘 어울린다고, 정말 아가씨 같고 네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생각들이 흘러넘쳐 너를 바라보는 눈에 담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번 온기를 나누며 궤적을 그리다보면, 어쩔 수 없이 이 시간을 오롯이 사랑해버리는 것이다.
 이 추억은 제 생에 빛나는 보석으로 남을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떤 어둠에서도 밝게 빛나는, 언제고 다시 꺼내어보며 웃을 수 있는 그런 소중한 나날들.
 그런 일들에 함께여서 행복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나날.



 ...2022년 7월 28일 글... 뭔 생각으로 썼니... 다시 보니까 못 보겠다